박재완 장관은 지난 4월 25일 기자들과 만나 “현 정권 들어 기업에서 신규채용을 늘리고 있으며, 정규직 일자리도 늘고 있다”면서 “반도체나 휴대전화 공장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청년실업률이 높은 것은 대학에서의 ‘문사철(문학·사학·철학 전공) 과잉공급’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경향신문 2011년 4월 27일자, 박재완 노동 “청년실업은 文·史·哲 과잉공급 탓”)


지난해 11월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정부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이 높은 청년실업률의 근본 원인을 규명한 것일까. ‘문사철(전공자)의 과잉공급’. 인문학과 청년실업률의 함수관계를 밝혀낸 신 수요공급의 법칙인가? 김철웅 경향신문 논설실장은 4월 28일자 ‘여적‘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과잉공급이라 함은 적정공급을 전제로 한 말인데, 그는 어느 정도를 적정하다고 보는 것일까.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킬 수 있는 무슨 데이터와 계산방법을 갖고 하는 말인가. 그게 아니고 막연하게 해본 소린가. 그렇다면 높은 청년실업률의 책임을 엉뚱하게 인문학, 나아가 인문학 전공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졸업 후 취업률이 낮아 대학에서 폐과되는 문사철 학과도 수두룩하다. 모든 게 학문 탐구보다는 실용을 먼저 따지는 세태 탓이다.


그런데 아래 박 장관의 사진. 저 메모용지는 ‘문사철 데스노트’?
‘인문학의 위기’라는데, 박 장관 인식을 따르자면, 인문학은 ‘청년실업의 위기’에도 영향을 준 셈이다.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대학을 기업의 직업훈련소나 하청공장으로 취급하는 인식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런 인식은 또 그런 현실을 만들었다. 국민의 정부 때인 2001년 1월 29일 교육부는 교육인적자원부로 이름을 바꾸었다. ‘인적자원(人的資源·Human Resources)’? 국가의 교육정책이 반도체나 휴대전화 공장에서 일할 인력 즉 ‘생산수단’을 만드는 데로 옮겨진 시발점이었다. 이 교육인적자원부는 2005년 대통령 보고에서 “다양화·특성화된 ‘시장반응형’ 인력을 양성하고, 지식기반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산학연 협력 활성화’를 통해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시장에 반응하는 인적 자원’은 인간인가, 상품인가.


지난 2004년 10월 28일 당시 안병영 교육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정부중앙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나는 문사철을 편애한다.” 이계안 전 의원이 지난해 초 블로그에 쓴 글의 제목이다. 그는 1985년 현대중공업 런던 사무소에서 일하던 중 회사 배려로 영국의 한 머천트 뱅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 전 의원과 영국인 5명, 중국인 1명으로 구성된 팀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수주한 동아건설 자금운영을 분석했는데, 금세 토론 실력이 드러나고 말았다고 한다.

자료 중 ‘숫자’로 된 것을 넘어서는 순간, 나는 동료들과 토론을 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 수립 토론에서 서울대 상과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나는 회계학이나 경영학 시간에 듣도 보도 못한 문학, 역사, 철학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베이징대학을 나온 그들은 모두 문사철 전공자였다. 이 전 의원은 “문학, 사학, 철학 등 인문학에 대한 이해 없이 배운 경영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영자가 되려면 문사철에 대한 최소한의 소양은 갖춰야 한다”고 깨달았다.


 

영국 미들섹스대 철학과 학생·교직원들이 ‘대학은 공장이다. 파업하라! 점거하라!(THE UNIVERSITY IS A FACTORY. STRIKE! OCCUPY!)’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국? 이 전 의원이 겪은 영국 사례는 옛날 이야기다. 지난 4월 영국의 미들섹스대가 철학과를 폐지하고, 교수도 전원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통보했다. 다른 학과에 돈을 투자하면 더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학생·교직원들이 반대운동을 벌였고, 노엄 촘스키,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주디스 버틀러 같은 유명 지식인이 폐지 반대를 촉구했다. 미들섹스대 철학과는 킹스턴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하면서 폐과 사태는 벗어났다. 미들섹스대만의 일은 아니었다. 서섹스대, 켄트대, 킹스칼리지 등에서도 인문학과들이 폐지 위기에 빠졌고, 맨체스터대의 고전학과, 버밍엄대의 문화연구학과는 폐과됐다.

‘문사철의 과잉공급’을 청년실업률의 주범(?)으로 지목한 박재완 장관도 이 발언을 하면서 ‘문사철 폐과’를 염두에 두었을 것 같다. 박 장관 같은 ‘인적자원’에게는 문사철이 밥 먹여주기도 힘든 터에 취업을 시켜줄 리 만무할 것이라 여길 터다.

[##_1L|cfile10.uf@202523434E5AFC24177630.jpg|width="300" height="292" alt="" filename="cfile10.uf@202523434E5AFC24177630.jpg" filemime=""|도정일 교수 | 경희대 제공_##]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은 1999년 3월 24일자 한국일보에 ‘철학이 밥 먹여주나라니’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은 “철학이 밥 먹여주나?”라고 묻는 사람에게 “당신은 왜 밥을 먹는가?”라고 반문한다. 기능주의자들은 이 “왜?”를 따지는 질문 양식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 그런 질문은 무용지물이며 무용의 질문은 전면 폐기, 명퇴, 조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어떻게 돈 벌까”만 있으면 됐지 “왜”는 무슨 왜? 그러나 그 ‘어떻게’에도 질문이 따라 붙는다는 것을 그들은 잊고 있다. 사람은 살아야 하고 돈 벌어야 한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돈 버는가에 따라 인간은 인간이 되기도 하고 인간 이하가 되기도 한다. 인문학은 이 ‘인간 이하’를 거부하기 위한 질문, 가치, 기준, 사유이다. 이 근본적 질문을 폐기하는 사회는 ‘기본이 없는 사회’이다. 기본이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런 위기의 사회가 아닌가? 그런데도?


십수년이 지났지만 도 대학장의 반문은 현재진행형이다.

Posted by 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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