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까지 한국 스포츠의 승부조작 사건은 드물었다. 미국의 프로복싱, 일본의 프로야구, 유럽의 프로축구에서 벌어진 승부조작 사건이 외신을 통해 흘러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군사정권의 엘리트 체육 육성시책에 따라 아마 스포츠가 활성화되면서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나곤 했다.

승부조작 의혹에 따른 마사회 직원들의 자살, 조폭과의 연계 사실이 드러난 92년 10월, 마사회의 묵인을 다룬 경향신문 보도. 마사회 직원들은 당시 파문이 커지자 자정대회를 열기도 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열린 제10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파견 후보 최종 선발대회 소녀부 경기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벌어져 크게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중략) 이양은 시합 전 (상대 선수들에게) 져주라고 강요하는 김모 코치의 지시에 울면서 항의했으나 끝내 들어주지 않아 강요된 패배를 감수했다고 울먹였다." (경향신문 1970년 1월 26일자, 코치가 승부조작, 아주 탁구 선발 소녀부서)

당시 승부조작은 ‘국가대표’ 자리를 두고 일어났다. 김모 코치는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들을 국가대표로 더 선발시키겠다는 욕심에 이미 대표로 확정된 어린 선수에게 패배를 강요한 것.
그해 3월에는 아마복싱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일부러 져주기 조작이 이뤄졌다. 1991년에도 당대 최고 실력의 김택수, 유남규 선수가 각각 팀 후배들에게 상비군 동반진입의 기회를 주기 위해 1승을 헌상해 신문 가십란을 장식했다.

‘태극마크’ 나눠먹기는 2010년까지 이어진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2관왕 이정수가 그해 3월 불가리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 출전하지 않은 것이 코치진 강압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9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일부 코치와 선수들이 모여 모두가 랭킹 5위 안에 들어 대표선수가 되도록 협조하고, 올 시즌 국제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딸 수 있도록 하자는 ‘협의사항’도 문제가 됐다.

고교 스포츠에서는 동향이란 이유로, 형제팀이란 이유로 승부조작이 일어났다.

"경기도 야구협회는 25일 이곳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20회 문교부장관기쟁탈 전국 중학교 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고의로 승부를 조작하여 4대 4로 비긴 경상중과 대구중 팀을 징계해달라고 해당기관에 건의키로 했다. (중략) 주최측은 경기장에서 긴급이사회를 열고 양팀이 같은 고장 팀으로 공동우승을 노려 승부를 조작했다고 보고, 게임 종료를 선언하지 않았다." (경향신문 1977년 7월 26일자, 중학 야구서 승부조작)

승부조작 의혹에 따른 마사회 직원들의 자살, 조폭과의 연계 사실이 드러난 92년 10월, 마사회의 묵인을 다룬 경향신문 보도. 마사회 직원들은 당시 파문이 커지자 자정대회를 열기도 했다.



2010년 9월 19일 포철공고는 2010 고교클럽 챌린지 리그 경기에서 광양제철고를 상대로 5대 1로 이겼는데, 후반 34분부터 종료까지 9분 동안 5골을 넣었다. 당시 두 고교가 같은 재단 산하라서 무더기 골을 주고받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92년 5월 체급별 씨름장사대회에선 한 선수가 샅바를 잡고 힘을 겨루던 중 상대에게 “형님 빨리 넘기슈, 넘어질테니”라고 말한 게 TV 전파를 타 공공연한 비밀이던 ‘양보 씨름’이 공개된 적도 있다.

돈과 도박이 매개된 승부조작 사건에서 경마를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경마판은 도박조직이 연계된 각종 승부조작 사건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92년 9월 드러난 승부조작은 사람 목숨도 앗아갔다.

정몽규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5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최 근 불거진 승부조작 파문과 관련, 프로축구 팬들에게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한국마사회 소속 조교사 3명이 승부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당시 폭력조직과의 연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우승 예상말의 정보를 흘려주고 대가를 받는 것을 뜻하는 ‘바람잡이’, 개인들 간에 우승말을 예측, 내기를 거는 식의 사설경마란 뜻의 ‘맞대기’란 은어도 공개됐다. 경마장에서는 조폭들을 한국의 ‘마(馬)피아’라고 불렀다. 자살한 조교사 한 명은 “나 하나로 이번 일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그런데 검·경은 복마전의 대명사 경마판을 제대로 감시하고 있었을까.

"한국마사회가 검찰과 경찰에 승부조작 등 ‘부정·불법 경마 신고 포상금’ 명목으로 매년 2500만원 이상을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검·경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덤으로 부수입까지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마사회 측은 내부규정을 들어 “부정경마 방지를 위한 격려성 성금”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포상금 지급을 빌미로 ‘접대성 상납’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경향신문 2000년 10월 16일자, 마사회 검·경에 접대 포상금)

6월 1일 오전 강원도 평창 한화리조트 휘닉스파크에서 열린 2011 K리그 워크숍에서 K리그 모든 구성원들 이 승부조작 근절 서약 선서를 하고 있다. 김병지가 선수 대표로 "도박 및 부정행위 근절 서약서"를 읽고 있다. (이석우 기자)


경마판 못지 않게 고질적인 승부조작이 일어난 곳은 축구계다. 승부조작 사건과 의혹이 계속 터져나왔지만 제대로 근절되지 않았다. 1998년 7월 차범근 전 월드컵대표팀 감독은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승부조작 의혹을 제기해 파문이 일었다. 프로연맹은 조사 결과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며 차 전 감독에게 5년 자격정지 조치를 내렸다.
2000년대 초반 한 프로팀의 운영국장으로 재직했던 김모씨는 리그 막바지에 상대팀 선수를 매수해 경기를 조작, 우승컵을 안았다고 폭로했다. 2008년에는 K3리그와 내셔널리그의 감독과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중국 도박업자로부터 수백만원씩을 받고 고의 패배 등의 방법으로 승부를 조작했다.

고대 올림픽은 로마 제국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폐지 조치로 막을 내렸다.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터에 이교도의 신 제우스를 기리는 경기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뇌물과 반칙, 승부조작이 횡행하며 타락했던 것도 고대 올림픽의 쇠퇴를 불러온 이유로 거론된다.
축구선수의 자살로도 이어진 올해 축구 비리 사건은 쇠락의 기로에 서 있다. 부정행위 근절 선서 같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Posted by 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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