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사는 5·16 쿠데타 넉 달 뒤에 벌어진 풍경을 이렇게 전한다.

연예인 궐기단 230명은 22일 상오 100여개의 ‘플래카드’를 들고 비가 내리는 서울 거리를 행진했다. “예술을 통하여 혁명과업을 완수하자”고 외치는 ‘마이크’를 앞세운 이들의 대열 중에는 혁명의 결심을 다짐하는 플래카드도 끼어 있었다.(경향신문, 1961년 9월 22일자, ‘예술을 통해 혁명과업 완수’)
 
고 배삼룡씨가 2005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글을 보면, 이 연예인 궐기단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배씨는 연예인 궐기단은 전국을 돌며 5·16 지지 계몽쇼를 하는 게 목적이었다. 배우들은 그런 정치적인 이유보다 출연료를 선불로 주는 파격적인 조건에 더 끌렸다. 당시엔 어느 극장에서 쇼를 하더라도 출연료를 선불로 주진 않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궐기단은 극장이나 마을 창고, 학교 운동장에서 5·16 쿠데타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선전하는 공연을 벌였다. 자발적 정치·사회 참여는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1962년 6월 20일자 경향신문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 프로파간다와 캠페인을 위한 연예인 동원은 강화됐다. 연예인들은 ‘깨끗하고 명랑한 서울’을 위해 ‘비짜루’를 들고 서울 세종로, 남대문로를 청소했다. 1962년 6월 20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이들은 청소에도 섬세한 솜씨를 보여 구석구석 깨끗이 쓸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청결과 질서 캠페인은 ‘조국 근대화’란 명목으로 진행된 것들이었다.

7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캠페인과 프로파간다의 영역이 확장됐다. 경찰은 청소년 선도 캠페인에 연예인들을 불렀다. 헌혈 행사에 나간 연예인들은 ‘사랑의 헌혈, 생명으로 살아난다’는 어깨띠를 매고, 거리를 누볐다.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내용은 지난 일이라 여길 게 아니다. 연예인들은 지금도 공공기관과 지자체들이 벌이는 각종 캠페인과 홍보에 동원되고 있다.

서울 명동에서 청소년 계몽활동을 벌이는 연예인들. 트위스트 김과 하춘화씨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내가 돌본 새싹 거목되어 번영한다’는 내용의 계몽 전단을 나눠줬다. 서울시경이 주최한 캠페인이다. 당시 경향신문은 “실질적 선도보다 행사가 요란했다”고 전한다. (경향신문자료사진)


주로 거리에서 정권의 선전이나 계몽의 도구로 활용되던 연예인들은 1970년대 후반 접어들며 정치의 장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동양방송에서 활동한 탤런트 홍성우씨가 1978년 10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최초의 연예인 국회의원으로 기록됐다. 당시 옹기장사로 불우이웃돕기를 하며 지지자를 모아 당선된 홍씨를 두고 “탤런트 출신의 기묘한 정계 데뷔”라는 흥미성 기사들이 나오곤 했다.

홍씨 당선 이후 연예인들의 정치참여 대열은 늘어났다. 주변의 시선은 탐탁지 않았다. 고 유현목 영화감독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당선 이후 ‘딴따라 대통령’이란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서울 도봉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탤런트 홍성우씨가 개표 완료 후 동료 탤런트들과 기뻐하는 모습. (경향신문)


요즘 저 나라 대통령이 연예인 출신이라고 해서 이 나라 몇몇 연예인들도 들떠 가지고 정치지망을 꿈꾸는 것을 들을 때에 그 치기에 몸서리쳐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인기도가 대중으로부터 왔음은 틀림없지만 비전문적인 방법으로 그 대중을 다스리겠다는 모험은 어색하기만 하다.(경향신문 1980년 11월 13일자)

연예인들의 자발적이고 이념적인 정치·사회 참여의 기록은 87년 민주화 항쟁 때 와서야 찾을 수 있다. 아래는 1987년 6월 6일자 경향신문에 나온 단신 기사.

이영후씨 등 연주인·가수 등 연예인 88명은 5일 ‘4·3조치에 대한 연예인의 견해’란 성명을 발표. 4·13 호헌조치 철회, 언론 출판 집회 예술 창작 표현의 자유 보장, 투옥된 양심수에 대한 석방과 사면 복권 등을 요구했다.

경향신문


1990년대 초에는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연예인도 등장했다.

“정치행위나 노래 부르는 일이나 우리 사회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문화활동이므로 배척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가수 민해경씨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1991년 4월 27일 진보야당인 민중당 후원기금 마련 디너콘서트를 준비 중이었다.

‘예술계에도 1노 3김 바람’(1987년 11월 21일자), ‘연예 예술인 바쁘다 바빠’(1992년 10월 17일자) 같은 기사처럼 직선제 대선을 치르면서 연예인들의 정치참여는 늘었지만, 여전히 정치인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이었다. ‘얼굴마담’으로 이용된 측면이 많았다. 2002년 대선 때 가서야 문성근·명계남·신해철씨 등이 대선 담론과 선거유세에 적극 뛰어들며 연예인 정치참여의 새로운 형태를 선보였다.


연예인들의 정치·사회 참여는 각종 이슈와 현장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배우 김여진씨의 참여는 극적이다. 홍대 청소노동자, 반값 등록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에서 이슈메이커로 떠올랐다. 연예인들이 스크린쿼터 같은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로 집회에 나선 적은 있지만, 사회의 이슈·현안 한복판 그것도 집회·시위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드물었다. 김씨는 한진중공업 노동자 해고에 항의하며 고공 크레인 농성 중인 김진숙씨를 응원하러 갔다가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한국 연예인 정치·사회 참여사의 한획을 긋는 사건으로 봐도 될 것 같다.

Posted by 조모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