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5월 말 평원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은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랐다. 공장의 일방적인 임금 삭감 통보에 맞서 싸우기 위한 농성이었다. 한국노동운동사의 첫 고공농성. 강주룡은 한국 여성노동운동가 1호로도 기록됐다. 당시 동아일보는 “무산자의 단결과 고주(고용주)의 무리를 타매하는 연설을 하였다”고 시위를 전한다.
1931년 <동강> 7월호는 “끝까지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근로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 뿐”이라는 연설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을밀대에서 “누구든지 이 지붕 위에 사다리를 대놓기만 하면 나는 곧 떨어져 죽을 뿐”이라고 했다. 8시간 만에 경찰에 붙잡힌 강주룡은 옥중 단식투쟁을 이어가며 임금 삭감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 자신은 해고를 당해야 했다.

 

강주룡의 을밀대 고공농성을 다룬 동아일보 기사. 강주룡은 ‘체공녀’로 불렸다. (경향신문 자료)


고공농성은 진압과 체포를 피하면서 노동자의 주의·주장을 선전하는 투쟁 방법이다. 전술적 측면이 강하지만, 고공농성 현장은 노동자들에겐 ‘백척간두’의 현장이기도 하다. 진일보하건 나락으로 떨어지건 때로 생사를 걸어야 하는 극한투쟁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이 강화되면서 고공투쟁이 다시 등장했다. 1990년 4월 25일 현대중공업의 총파업은 ‘골리앗’ 총파업으로 불린다. 현중 노조는 임·단협 성실교섭 요구와 노동운동 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82m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에 올랐다.
노조는 87년 7월 노조 결성 이후 크고 작은 투쟁을 이어갔다. 공권력은 강경·무력 진압으로 일관했다. 90년 4월에도 1만2000여명의 공권력에 맞서기 위해 결사조 78명이 골리앗에 올라갔다. 이들은 단식투쟁을 하다 농성 13일 만에 골리앗에서 내려와 전원 연행됐다.

그해 7월 4일에는 대구 남선물산 노조 집행부 3명이 회사 내 15m 굴뚝에 올랐다. 임금협상 타결과 구속자 석방·복직을 요구했다.

대우조선 노동자 50명은 이듬해인 91년 2월 7일 파업 돌입 선언식 뒤 투쟁결사대를 구성해 104m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을 점거했다. 당시 노동자의 고공농성은 구속으로 이어졌다. 이들 투쟁에 관한 공권력과 재판부의 부정적 인식은 견고했다.
91년 11월 대우조선 파업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최근 근로자들의 임금수준이 다른 국가에 비해 크게 올랐고, 노사관계가 성숙단계에 이르렀는데도 피고인들이 생산현장의 중요 시설인 골리앗 크레인을 점거농성하는 등 불법파업을 저지른 것은 용서할 수 없다”였다.

정권 교체 뒤에도 고공농성은 이어졌다.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대치가 높아진 측면도 있지만, 신자유주의 도래와 맞물려 자본·권력의 노동 억압이 강화되자 반작용으로 극한투쟁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이어졌다.

2000년대 이후 고공농성의 기록은 숱하다. 노무현 정권 때 고공농성은 잦아졌다.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이 129일간 고공 크레인 농성을 벌이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조 파업과 18억여원에 이르는 손배소, 가압류 중압감이 김 위원장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 위원장은 유서에 “노동자가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라고 적었다.

2009년 8월 6일 쌍용자동차 노사 합의 이후 굴뚝에서 농성 중이던 노조원이 헬기로 구조되고 있다.(김정근 기자)



2004년 5월 5일 어린이날 새벽 전국 타워크레인기사노조 조합원들이 서울·경인지역 공사현장에 설치된 70∼80m 높이의 타워크레인 87대를 점거했다. 이들은 ‘일요일은 쉬고 싶다’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2005년 5월 1일 노동절날 울산 건설플랜트노조 조합원들은 SK 울산공장 정유탑에 올라 점거농성을 벌였다.

2006년 3월 6일 코오롱 경북 구미공장 노조원들이 노조 탄압 중단과 정리해고 철회 등을 주장하며 사내 송전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해 5월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오전 5시 30분부터 공사현장 70m 높이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이들은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 약속을 지키라’는 현수막을 늘어뜨리며 “비정규직 노조를 인정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2007년 세밑에는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사측의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서울시내 곳곳의 교통관제용 CCTV 탑에 올랐다. GM대우자동차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박현상씨도 그해 27일부터 GM대우 부평공장 옆 30m 높이 CCTV 관제탑에서 고공농성을 진행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도 KTX 승무원,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조,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 로케트전기 해고자,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쌍용차 노조 간부들이 크레인으로, 철탑으로, 굴뚝으로, 광고탑으로 올라갔다. 이들에게 세상은 30년대나 80·90년대나 마찬가지였다.

2008년 11월 울산 현대미포조선 조합원들이 70m 굴뚝에 올라 ‘용인기업 해직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홍우씨가 현장사무실 4층 난간에서 밧줄에 목을 매고 뛰어내렸다. 이씨는 “여보 미안해.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건 회사의 탄압이 심하고 헤쳐가기 너무 어려워서야”라는 메시지를 아내에게 보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35m 높이의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이 22일 크레인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김문석 기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2일 전체회의에서 오는 29일 ‘한진중공업 경영상 해고 및 노사관계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한 청문회’를 열기로 의결했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국회 청문회에 서는 것이다. 35m 높이 크레인에 168일째 몸을 실은 여성노동자 김진숙씨(51)가 일궈낸 승리였다.(경향신문 6월 23일자 1면, 노동자 김진숙, 크레인 위에서 세상을 바꾸다)

임금 삭감을 막아냈던 강주룡의 1931년 고공농성 투쟁은 80년의 시차를 두고 김진숙씨의 고공농성으로 재현되는 듯하다. 하지만 국회 청문회를 이끌어낸 ‘김씨의 승리’는 종착점이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사문제에 정치권이 개입하지 말라”며 청문회 철회를 요구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지난 20일 환노위 출석을 앞두고 갑자기 해외출장을 떠난다고 통보했다. 그는 김씨의 고공농성 기간 중 단 한 차례도 노조와 대화하지 않았다.

Posted by 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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