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출신 E씨(34)는 2007년 5월 서울 이태원의 한 이탈리아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다 직원에게서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밥을 먹으러 온 건데 왜 신분증을 보여줘야 하느냐”고 묻자 직원은 “흑인이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중략) 또 다른 나이지리아 출신 O씨도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았다. O씨는 신분증을 보여줬지만 “흑인이나 나이지리아인은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쫓겨나야 했다. (경향신문 2011년 7월 27일자. 한국, 다문화 사회인가… 식당 가면 “흑인은 출입금지”)


방글라데시인 수밋 다스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하철을 타니까 사람들이 옆에 앉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었고, 버스에서는 ‘동남아 XX들’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고도 했다.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인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한국을 유럽 단일문화의 롤 모델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종적으로 단일화된 국가 중 하나로 일본, 대만과 마찬가지로 다문화주의를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취재팀이 확인한 인종차별 실상에 비춰보면 노르웨이의 ‘이념적 광신도’의 분석은 그다지 틀린 것만은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외국인 연수생’이란 이름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1990년 초·중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래는 1995년 6월 25일 경향신문 매거진X 기사다. 외국인 노동자 10만명 시대를 맞았지만 이들에게 차별, 모욕의 언사는 일상이었다.

2000년대라고 나아진 건 없었다. 오히려 인종차별과 인권침해가 늘어난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은 늘어났다. 불법체류를 처벌할 때도 국적과 인종차별이 있었다.
2005년 경향신문이 ‘2004년 출입국관리법 위반자 국적별 처리현황’을 입수·분석해보니, 정부 당국에 적발된 외국인 불법체류자 중 중국동포, 고려인, 아시아·아프리카 출신의 강제추방(강제퇴거) 비율이 30∼40%대인 데 비해 미국·일본 등 출신의 강제추방 비율은 1∼2%대였다. 강제추방보다 수위가 낮은 ‘출국권고’ 비율은 일본·북미·유럽이 10~20배 높았다.
이게 법무부가 강조하는 ‘법과 원칙’의 단면이다. 불법체류 노동자들에 대해선 인정사정 없었다. 백내장으로 세 번 수술을 받은 노동자도 보호소에 수감된 뒤 강제추방됐다.

2007년 2월 25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참사 추모제 및 규탄집회에 참가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을 들고 정부의 사과 등을 촉구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보호소는 어떤 곳인가. 2007년 2월 11일 법무부 산하 전남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외국인 9명이 죽고, 18명이 다쳤다. 강제추방 전 거치는 이 보호소란 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보호’는 받지 못한 채 욕설과 폭행을 예사로 당했다.

2007년 체류 외국인 100만명 시대였다. 그리고 유엔은 아래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위원장 레지 드 구테)에서 한국의 순수혈통주의와 혼혈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9∼10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위원회의 한국 이행보고서 심사과정에서 안와르 케말 한국 보고서 특별보고관 등을 비롯한 위원들은 단일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한국 문화가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위원들은 한국에는 인종차별의 정의를 명시하고 인종차별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이 일절 존재하고 있지 않다며 인종차별 금지를 조속히 제도화할 것을 촉구했다.(경향신문 2007년 8월 13일자, “한국 순수혈통주의 인종차별 소지 있다” 유엔 보고서 지적)

2007년 11월 광부·간호사로 20대에 이주노동을 떠난 11명이 한국을 찾았다. 그들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이주노동자로서 부끄러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백인 영어강사의 지위는? 이주노동자지만 이주노동자가 아니다. 백인우월의 사회에서 이들은 대접받는다. 하지만 영어선생이라고 다 같은 선생이 아니다.

2007년 10월 경향신문과 만난 케냐 출신 메리 온양고는 영어교사로 교육을 받았다는 증명인 테솔(TESOL) 자격증이 있었지만, 학원 면접 뒤엔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택시 승차 거부에 욕설까지 온갖 모욕을 당했다. 지하철에선 의자에 앉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주변이 텅 비기 때문이다. 메리의 말이다. “한국인들은 어딜 가나 흑인이면 일단 피하고 본다. 20∼30년 전 미국의 차별 많은 남부지방에 온 것 같았다.”

 

메리 온양고가 지하철 좌석에 앉지 않고 다른 한국인 승객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혼자 서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


외국인을 위한 법·제도도 미비하다. 인종차별과 욕설, 모욕이 난무해도 처벌받았다는 한국인은 없었다. 당하고 사는 데 익숙해지거나 법을 불신했을 수도 있다. ‘강제추방’하는 법에만 익숙한 한국에선 2009년에 가서야 인종차별 발언에 첫 모욕죄가 적용됐다. 그해 7월 서울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던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은 버스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

버스 뒤편에 앉아 있던 양복 차림의 박모씨(31·회사원)가 후세인을 향해 “더러운 놈… 냄새가 난다”며 소리쳤다. 후세인이 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박씨는 “너 어디서 왔느냐. 아랍 놈이냐”면서 영어 욕설을 섞어가며 계속 시비를 걸었다.(중략)
경찰서에서 후세인은 박씨가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며 정식 고소했다. 경찰은 기초조사를 벌인 뒤 사건을 인천지검 부천지청에 송치했고, 검찰은 박씨를 형법상 모욕 혐의로 약식기소했다.(경향신문 2009년 9월 7일자, 인종차별 발언에 첫 모욕죄 적용)

“토인은 모두 추하고 더럽고 빛이 검다.” 민영환(1861~1905)이 1897년 영국 가는 길에 들른 싱가포르에서 한 말이다. 한국의 근대는 인종주의·민족주의·제국주의·오리엔탈리즘을 내재화하는 과정이었다. 외국인에 대한 적대·배제의 상황은 근대 조선 시기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칸트는 ‘보편적 환대’를 “외국인이 타국 땅에 발을 디뎠다는 이유만으로 그 국가 사람들로부터 적으로 취급받지 않을 권리”라고 설명했다. 이 환대는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Posted by 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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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mg 2012.03.27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외국에 오래 살아서 인종차별 많이 받아 봤지만, 그래도 나도 받았으니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사람은 다 사람인데 차별하면 안돼겠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당하는 입장이 서면 얼마나 기분 나쁘고 불합리적인 일인지 깨닳지 않을까요.
    사람은 외모, 인종, 성별을 떠나 다 같은 사람인데 안타깝습니다.

    외국에서도 다 하니 나도 해야겠다가 아니라 (법으로 아무리 금지해도 암묵적으로는 종종 일어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말로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멋진 나라가 되길 희망합니다.